나의 글

겨울 속으로/ 엄원지

불시착자 2012. 1. 25. 09:12

 

 

 

 

 

         겨울 속으로

 

                             엄 원 지

 

겨울보다 더

심원한 시간의 여행은 없다

산과 들이 얼어붙고 우리들의 가슴마저

황폐해지는 이 계절은

비로소 삶과 죽음의 비밀함을 깨우치는

겸허의 시간이기도 하다

 

 

 

보라

안간힘을 쓰며 화려한 햇살을 동경했던

싱싱한 저 꽃잎들이 죽음의 나락으로

스스럼없이 추락하는 장렬한 모습을

 

 

 

아름답구나

너무도 투명하구나

낙엽 숲 속에 피어나는 저녁노을 빛이여

햇살이 황혼에 지며 외로워 부르는 노래들

억새풀 사이로 들려오는 황량한 갈바람 소리

그리고는

새벽녘 이슬 머금고 돌아갈

별빛의 쓸쓸한 그림자

 

 

 

낙엽은 찬 대지에 묻혀

그의 숨결이 점점 차가워져 옴을 느끼어도

결코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이 숲에 태어나

언제나 그랬듯이

저 쪽 노을빛 타오르는 겨울 속으로

다시 시간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기에

 

 

 

숲이 헐벗는 것은

혹한을 못이겨서가 아니라

봄의 새싹을 틔우기 위한 성숙한 삶의 희생이다

지치지 않는 희망으로

영원을 향해 꿈을 불태우는 순례자의 운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 심원하며 성스러운 겨울 저녁이 다 가기 전에

노을빛도 쓸쓸한 낙엽 숲길을

나와 함께 걸어보지 않으려느냐

이 겨울바람 보다도 더 외로운 가슴이 되어

너와 나의 허무한 체온을

함께 가슴 꼬옥 안아보지 않으려느냐

 

 

 

이 추락하는 숲에서 너를 기다리리라

침묵하는 가슴으로

바람과 노을과 억새풀과 별빛의 시를 안고서

너 두려움으로 걸어 올

겨울 숲, 언제이던가 네게 말한

은둔자의 작은 오두막에서.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간 벽돌집/엄원지  (0) 2012.06.17
압록비가/엄원지  (0) 2012.02.20
시혼곡(詩魂曲)2/엄원지  (0) 2011.03.30
자네는 어찌 그러한가/엄원지  (0) 2011.03.27
서원(誓願)/엄원지   (0) 201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