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자네는 어찌 그러한가/엄원지

불시착자 2011. 3. 27. 18:13

 

 

                                                                                                                         엄원지 촬영/무궁화 5

 

                         

                          자네는 어찌 그러한가

                       -어느 민초(民草)의 노래-

 

                                                   시/ 엄 원 지

 

여보게 글쓰는 양반

 

자네는 매일 글을 쓰고 세상을 평하며 산다고 하니

참으로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네.

하기사 그 옛날 자네같은 사람을 바로 선비라고 하지 않았는가

정말 존경한다네.

자네가 그어대는 펜 끝의 조화가 세상을 흑(黑)으로도 만들고

백(白)으로도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은

무식한 나도 대충은 알고 있다네.

 

그런데 자네는 어찌 그러한가

실상 자네는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어정쩡한 유채색이 아닌가.

자네는 어떤 색깔이든지 자네 생각과 맞아 떨어지면 칭찬하고

자네와 맞아 떨어지지 아니하면 혹평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닌가.

 

역사를 바로 보게나.

타협하지 말게나.

정직하게 살게나.

 

그렇게 살지 못하고 그렇게 쓰지 못한다면

선비라는 칭호와 날카로운 펜을

우리는 자네에게 쥐어 줄 수가 없다네.

무지한 우리들을 대신하여

세상이 바로 갈 수 있도록 힘있는 글을 써 주게나.

 

여보게 판관 양반

 

자네야말로 인류의 역사 이래로 정의(正義)의 불사신이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에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어리석고 사악한 것들을

인륜과 도덕을 기준삼아 합법적으로 체형을 내리는

권한을 지녔으니 위대한 양반이 아닌가.

 

자네의 지혜에서 나오는 뜨거운 불은

죄짓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않는 철면피에게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죄없이도 상처를 입는 선한 백성에게는 최후의 희망이 되어

자네야말로 괴로운 세상의 어둠을 벗겨내고 맑게 하는,

현세(現世)에 있어 신(神)의 유일한 대리인일세.

 

그런데 자네는 어찌도 그러한가

유전이 무죄요 무전이 유죄라는 말을 많은 백성들이 공공연히 해 왔으며

요즘은 신용어(新用語))로 유(有)권력이 무죄요 무(無)권력이 유죄라고

오고 가는 이마다 한마디씩 안하는 이 없으니,

자네 혹시 중국에서 건너 온 '포청천'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흔들려서는 아니되네.

흐려져서도 아니되네.

 

권력좋고 돈많다 하여 눈감아 주지말고

힘없고 가난하다 하여 봐 주지말고

단지 공평하게 선(善)만이 올 곧게 설 수 있도록

정의만이 이길 수 있도록 냉엄하게 심판해 주게나.

저승까지 넘어가서

불의가 처벌받는 것을 보기에는

이승은 너무도 불의가 판을 치고 억울한 일이 많아

자네가 아니고서는 지금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부탁한다네.

 

여보게 의원 양반

 

번쩍이는 금뱃지가 정말 보기 좋으이.

그것은 이 나라 백성들의 자존심이고 희망이며 얼굴이 아닌가.

우리의 소망을 담아 우리의 대변자로 내세운 자네가

그 빛나는 상징물을 가슴에 달고 당당하게,

의사당에서 우리의 권리를 위하여 투쟁하는 모습은

한량없이 가슴 뿌듯한 일이라네.

 

살기좋은 복지세상이 금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아픔과 바램을 모아 소중한 한 표를 던져,

우리의 대리자로 보낸 자네가

우리의 권익을 위하여 힘차게 외쳐대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곧 바로 오리라는,

얼마나 희망찬 일인지

자네는 우리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네.

 

그런데 자네는 어찌 그러한가

경제견학,문화시찰하면서 의정활동 다녀온다 한

자네 가방 안에 화장품이 수백개라니

이 무슨 점잖치못한 행동인가.

혹 비싼 외제품팔아 나라위한 일에 쓰겠다는 애국충정의 발로인가

아니면 차기당선 선심품의 준비계획인가.

 

민심을 배신하지 말게나.

 

자네의 한걸음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고

민족의 꿈을 흥(興)하게도 하고 망(亡)하게도 한다는

사명감을 모쪼록 잊지말아 주게나.

그래도 우리는 자네에 대한 희망과 미련을

영원히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네.

 

여보게 기업한다는 양반

 

자네의 열정과 땀에 젖은 세월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물질시대는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네.

그 열악한 시절 속에서도 사막에서 밀림에서

달러와 바꾼 자네의 지혜와 경쟁은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원동력이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자네는 어찌도 그러한가

문어다발식의 사세확장에 열올리는 자네의 욕심때문에

작은 기업들은 울며 쓰러지고

그 작은 이들이 일어서보려 하여도 거대한 경제력 앞에서는 무력하니

이 점을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리고 허구헌날 노사분쟁이 끊이질 않으니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많이 벌면 벌수록

자네를 위해 땀흘린 노동자들에게 많이 베풀도록 하게나.

그러면 더욱 열심히 자네를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지 않겠는가.

 

법(法)에는 하자없다 하지말고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생각해 주게나.

 

그리하면 자네가 목표하는 황금의 성(城)도 더 빨리 이루어질걸세.

그만하면 자네는 평생을 굶어죽을 일은 없을 것이니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일도 잊지말아 주게나.

세상의 저 끝을 넘어갈 때에

확연히 웃으면서 갈 수 있을 것이네.

 

여보게 이웃양반

 

자네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 백의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선한 백성이 아닌가.

우리의 철천지 원수였던 왜나라에 훌륭한 문화를

전래해준 우수한 민족의 후예가 아닌가.

분단의 아픔이 있고 

아직도 많은 보이지 않는 부정부패 세력들이

자네의 가슴을 때로는 멍들게도 하지만

어찌됐든 봄, 여름, 가을,겨울이 있는 아름다운 땅에서

열심히 땀흘리며 가정과 사회를 위해 일하는

자네의 미래는 축복받고 희망찬 것임을 기뻐하게나.

 

그런데도 자네는 어찌 그러한가

자네가 하는 일이나 추구하는 사업이

뜻대로 잘 되질않고 난관에 봉착할 때 마다

그 탓을 어찌 자네 탓으로 돌리질 않고

세상 탓으로만 전가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가.

공직자가 어떻고, 대기업이 어떻고, 이웃의 누구누구가 어떻고,

가족 중에 누가 어떻고 하며 

자네 안되는 탓을 어찌 남에게만 돌리는가.

먼지같은 미세한 일에서 부터 국가의 대사(大事)까지

사실은 인연법 따라 오고가는 

모두 자신이 뿌린 씨앗만큼 거둬들이는 것이라네.

 

세상 아픈 모든 것을 자네 탓으로 돌리게나.

그리고 그 탓에 머물지 말고

그 탓을 벗어나기 위하여

열심히 성실과 노력을 아끼지 말게나.

 

푸루른 산과 들, 하늘을 보게나.

이른 아침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거리로 나서는 선한 저 이웃을 보게나. 

아름다운 세상을 기원하는 많은 이들의 기도소리를 들어 보게나.

아직까지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고

투명한 의식을 지닌

숨은 이웃의 깨어있는 눈이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한

언제인가는 자네의 묵묵한 노력들이 결실을 이루는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 올 것이네.

 

그러한 세상이

꼭 찾아 올 것이네.

 

                       -1995년 엄원지 시집 '표류하는 시인의 혼' 중에서-

                         2011. 3.  27  은거(隱居)에서 하재 엄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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