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文 시대의 ‘文’
문재인 정부 시대가 시작됐다.
무너져버린 박근혜 정부의 한심한 작태에 대한 법원의 심판이 남아있어 아직도 국민의 관심사이지만, 그 잔재에 대한 평결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국민의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판가름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박 정부 시절, 추정컨대 2014년 봄부터 일명 ‘문화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어 청와대나 문광부 주도로 관리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정권이든지 이 블랙리스트는 존재해 왔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의 정책 수행에 위협이 되는 개인 또는 무리를 그대로 방관해서는 국정 운영이 원활히 할 수 없기에, 역대 어느 정부이든지 어느 정도의 블랙리스트는 운영되어 왔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지난 박 정권처럼 1만여 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관리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큰 범죄 행위인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범죄는 절대 일어나서도 안되겠지만 정부와 국민의 화합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자유로운 문화예술인의 권익이 확보되리라고 믿는다.
문화예술을 한다는 것은 가난하게 산다는 말과 직결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침에 눈 뜨면 먹고 사는 경제적 일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인 삶인데, 쓰고, 그리고, 만들고 하는 작품 창작에 하루의 대부분을 몸 바치는 문화예술인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이미 이 나라의 세태가 된지 오래이다.
필자가 미국 L.A에 갔을 적에 모 미술학원에 가서 가정주부들에게 잠시 1시간 정도 부채에 소나무 작품법을 지도해 준 적이 있는데, 이 분들이 돈을 거두어서 필자에게 지도비로 사례한 기억이 있다.
한국 같으면 어림없는 모습이다.
정식으로 학원에 지도하러 간 것도 아니며,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미술반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한 수 지도해 준 것에 불과했는데 사례라니,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문화가 융성하고 , 제대로 그 정 위치를 고수하며 문화예술의 가치를 아는 나라에서는 그만큼 문화예술인에 대한 예의와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갖춰져 있음을 보게 되는 한 단면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36년 치하와 6.25 동란을 거치면서 너무도 가난한 나라이기에 먹고 사는 일에 더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 했던 시대상이 문화예술을 경시하고 문화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환경이 열악해진 결과임을 자인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고, 새롭게 재조명하여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들도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구조상 정부의 생각이 새롭게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
문화예술을 취미로 하든, 전문업으로 하든 문화예술을 크게 장려하고, 환경을 개선하며, 이에 대한 정책을 광범위 하게 전개해야 한다.
지난 박 정권 때 필자가 문광부에 몇 번을 들어가도 보고, 문광부의 정책 방향을 관찰해 보니 한 쪽으로 치우친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문화예술의 기본적인 뿌리는 문학과 미술 분야를 기초로 하는데 문광부의 정책 방향과 예산 지원은 대부분이 음악, 공연, 축제 등에 배분되어 주 업무 방향이 이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또한 지원이나 예산 편성이 수천 개의 소(小) 단체 등에는 그 규격이 까다롭게 되어 있고, 무엇하나 중,소 문화단체가 지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 거의 없는 상태였으며, 관공서와 친밀하거나 큰 단체에만 대량의 지원을 하게 되는 구조가 그간 역대 정부보다도 더 심한 현상을 느꼈음을 개탄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문학과 미술을 경시하는 정부, 두드리고 흔들며 움직이는 예술을 장려하는 정부의 행태가 과연 이 나라의 문화예술을 어떻게 전개시킬 것인지 회의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옛날 김구 선생께서는 ‘문화 강국’을 제창하셨다.
문화가 융성한 나라는 경제도 정치도 원만하게 발전하리라는 꿈을 꾸셨다.
옛 로마나 그리스나 중국의 문화 장려와 정책 기조는 국민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해양을 발전시키며 자국의 경제를 부흥하는데 큰 일익을 하였으며 그 나라의 역사를 대성시켰다.
이제 최소한의 가난은 벗어난 대한민국이 중점적으로 정책을 기울여야 할 곳은 문화예술 분야이다.
미래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 롤프 옌센은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시대를 정의했다.
“정보화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 일반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해주는 ‘드림 소사이어티 시대’가 온다”고 강조했다.
그가 세계 각국의 경제 환경과 소비 방향을 분석해 본 결과, 먹고 살 만한 나라(1인당 국민총생산 1만1,000달러)에서는 대부분 꿈과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향후 우리 시대는 문화 마케팅을 잘해야 경제적 이익도 산출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부흥에 많은 정책의 힘과 지원을 다해야 한다.
국내 수만개의 소(小)문화예술단체에게 지원이 골고루 갈 수 있는 정책을 지향해야 그들 단체들이 활성화되고 소속 개개인의 전문 문화예술인들이 기를 조금씩 펴며 자신의 창작에 전념하게 될 때에, 이 나라의 문화가 융성하게 된다.
근간 필자가 새 정부(과거 야당 시절이 있었다)와 연관된 한 인사를 만났는데, 이 분 말이 지난 박근혜 정권 때는 영화계의 제작 등을 편협하게 지원하거나 배제하여 억울한 영화인과 영화가 많은데 이를 ‘적폐 청산’ 해야 한다며 모모한 계획으로 지금 이 시절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 ‘적폐 청산’을 빌미로 또 다른 문화‘적폐 청산’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문(文)을 옛적에 성현이 정의하기를 “천하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도덕이 널리 퍼짐을 문(文)이라 하고, 학문에 근면하고 묻기를 좋아함을 문(文)이라 하고, 자애롭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백성을 가엾게 여기고 예를 베푸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백성에게도 작위를 주는 것을 문(文)이라 한다.”고 하였다.
사마소의 「사기정의(史記正義) · 시법해(諡法解)」에 나오는 말이다.
문(文)재인 정부 시대에는 문(文)의 길이 열려서 진정한 문(門)이 활짝 개방되고,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작에 마음 편히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문(文)의 시대가 되어서, 경제도 사회도 아름답게 발전하는 문화강국의 기초를 새롭게 다지는 시대가 되기를 열망해 보는 것이다.
2017년 한국신춘문예 여름호를 출간하며
발행인 엄 원 지
'엄원지 기자의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창규 서양화가의 예술혼 (0) | 2017.06.28 |
---|---|
서양화가 초로 신인숙의 예술혼 (0) | 2017.06.28 |
초로 ‘신인숙’ 서양화가의 ‘소나무’- 한국신춘문예 2017 여름호 표지 선정 (0) | 2017.06.14 |
[사설] 巨山, 巨木의 뿌리를 내리고 巨海로 떠나다./엄원지 (0) | 2015.11.26 |
금관 김수오-등채의 전통 장인(丈人) (0) | 2013.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