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춘문예 2014년 여름호-권두언/엄원지
세상에는 ‘때’가 있다
엄 원 지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수없이 오고 갔지만 계절은 어느
것 하나 남겨놓은 흔적도 없이 다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일생이 무상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그 모습이 제각기 다
르고, 제나름대로의 사연과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기
이한 일임이 틀림없다.
제 나름대로의 사연이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이 제각기 모습이 다
다름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무엇인가를 위해서 그 영혼과 몸을 다 바치는 제각각의 모습이 인
생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저절로 하게 만든다.
대개 우리네 일생은 유년과 청년, 중년 그리고 말년으로 나누게
되는데, 나는 여기에다 사년(死年)까지 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기이하고도 거대한 우주의 구성을 생각하고 있으면 인간의 삶이 이 지구상에서의 일정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윤회를,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그 외 모든 종교가 죽은 후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종교적 측면에서 사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저 우주---
밤이면 수많은 별이 빛나고, 과학의 추정에 의하면 무중력의 상태에서 그 넓이와 끝이 어딘지 알수없을 만큼 광대한 우주의 모습에 이 지구상에서의 아주 조그마한 내 모습이 이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한심한 것이어서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의미에서라도“광대무변한 우주를 향해 나는 지금 잠시 지구에 머물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서 나는 늘 사후, 즉 사년(死年)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묘한 것은 그 사년이 바로 생년(生年)이 되리라는 생각을 지금은 믿으며 살고 있다.
마치 나뭇잎이 가지에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나 새 봄이 되면 그 가지에서 다시 새 푸른 잎이 돋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은 묘하게도 그 모습은 제각기 다르나 그 조직과 구성 그리고 운행 법칙은 한결같이 같다는 진리를 언제부터인가 가슴에 지니게 되었다.
유년과 청년을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보고, 그리고 지금 말년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는 앞으로 만나게 될 다른 온갖 산전수전을 또 기다리며 살고 있다.
오래전 과거에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인생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여 많은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탄탄한 방어벽과 공격진도 갖추고 있어서 다가올 산전수전을 자신있게 응대할 자신이 서있기도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유년과 청년 그리고 중년의 ‘때’를 제대로 잡지못하고 허송 방관한 것이 가슴 쓰릴 수 밖에 없다.
이제 말년 앞에 서서 사년을 기다리며 그 ‘때’를 이제는 놓치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해 보는데 과연 잘되려는지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가고 있다.
문득 여름이 오는 깊은 밤 창가, 내 책장에서 옛 중국 당나라의 이백(李白)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고전을 읽게 되었다.
뛰어난 시 문장가이면서도 사생활은 고달프기만 했던 이 선배 시인은 도통한 기인이었고, 현실주의자이기도 하였다.
자유분망한 낭만, 고귀한 이상과 정치적인 야망, 모순투성이의 내면을 갖었으면서도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넓은 세상관을 지닌 도인이었다.
당시 뛰어난 문장가요 경세제민의 유가사상을 신봉했던 이 인재는 3년이라는 짧은 세월의 관직을 끝으로 낙향하고 마는데, 여러번의 ‘때’가 왔었음에도 이 ‘때’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방탕과 교만으로 그만 말년을 힘들게 보낸 그의 일생이 이 한여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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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창에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 ‘때’중에서도 사람과의 인연의‘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이백의 이야기에서 알 수가 있다.
이백의 나이 44세 때 낙향 길에 만난 33세였던 두보(杜甫)와의 만남은 내가 볼 적에는 이백의 일생 중에서 가장 값진‘때’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후일 두보는 이백에게 보내는 시 한편에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 / 두보(杜甫)
백야시무적(白也詩無敵) 이백 형의 시와 견줄 자 없으며
표연사불군(飄然思不群) 회오리바람 같은 뛰어난 정신은 다른 군상과는 다르오
청신유개부(淸新庾開府) 맑고 새로운 맛은 관직과 같고
준일포참군(俊逸抱參軍) 준수한 품위는 군사의 위엄과 같소
위북춘천수(渭北春天樹) 이곳 위나라엔 봄이 오고 있는데
강동일모운(江東日暮雲) 그곳 강동엔 구름에 해가 지고 있겠구려
하시일준주(何時一撙酒) 어느 때에 한잔 겸양의 술을 나누며
중여세논문(重與細論文) 우리 마음의 글을 주고 받을 수 있으리오
이백에게 있어서 당대의 시인이었던 두보가 보낸 이 시는 당의 황제와 양귀비와 만났던 그 시절보다도 참으로 값진 만남이면서 바로 사람의 ‘때’였지 않았는가 싶다.
이백은 뛰어난 인품과 문장가로서 출세가도를 충분히 달려갈 인재였음에도 시대적 질투와 모함에 빠져 삼년만에 파직돼 결국은 다시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회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죽고 마는데 일설에 의하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물 속으로 들어가 죽었다는 설도 있다.
사람에게는 다 ‘때’라는 것이 있다.
그 ‘때’가 어떤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 크기와 모양이 다르겠지만 내가 볼 적에는 이백이 당나라 시인으로서 후일 역사에 남는 위인이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정신과 시문장 때문인데, 역시 두보와의 만남이 가장 아름다운‘때’라고 느낀다.
만일 이백이 낙향하여 말년에 사생활을 맑게 하고 글짓기에 전념하는 선비로서의 삶만을 지향했다면 아마 그는 그렇게도 열망하던 황제와의 만남도 다시 가질 수 있는‘때’가 오지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두보가 이백을 시성(詩聖)이라고 극찬한 위 시처럼 두보와의 교류를 중시 여겨 당대에 더욱 좋은 시 풍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때’는 누구에게든지 오기 마련이다.
공부할‘때’, 출세할‘때’, 돈을 벌‘때’, 등등 많은‘때’가 일평생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때’는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인연의‘때’이며, 후회없이 죽을 수 있는‘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인연의 중요함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저 돈이 어디 있나?, 권력이 어디 있나?, 아름다움이 어디 있나?, 편함이 어디 있나?, 출세길이 어디 있나? 를 쫓아 매일의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인연의‘때’가 가장 중요한 인생의‘때’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묘한 것은 진정한 만남의‘때’는 억지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키워주고 밀어줄 인연을 만나기위해서 금전을 쓰고, 기회를 만들고 하는 인위적인 노력이 때로는 필요는 하지만 참된 인연의 ‘때’는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다.
마치 이백이 두보를 낙향 길에서 만났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백은 두보와의 만남을 자신의 삶의‘때’라고 느끼지는 않았는듯 싶다.
시인에게 있어서 당시의 시절 흐름을 볼 때에 그만한 인연의 ‘때’는 없었는데도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별다름이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수직과 수평의 규칙이 없으며, 균등과 조화의 묘(妙)는 쇠퇴해 가고, 평화와 인권은 땅에 묻혀서 결국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하고 죽어가는 자의 노여운 눈빛이 서산에 지는 노을이 되었다.
권세가들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지니질 않고, 경가제문(經家濟門)의 뜻에만 진정한 뜻이 있어 그 아래로 자신의 세력 불리기에만 급급해 사실은 세상 돌아가는 민중의 소리에는 이미 눈과 귀가 멀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때’는 오직 권력의 보전과 금력의 보충에 전력해 있어서 그‘때’를 위하여 위로는 아부하고 뇌물을 쓰며, 아래로는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한 충재(忠才)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능재(能才)들은 한숨을 쉬고, 어쩔 수 없이 세력가가 원하는 충재(忠才)가 될 수 밖에 없어
결국 이 시대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참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그 가진 능력을 제대로 실용하지 못하는 현 대한민국 시대는 당리당권(黨利黨權)을 쫓아 경가제문(經家濟門)하는 오늘의 정객들의 죄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수십년을 내려온 썩은 뿌리의 수직 수평의 정치권력이 만들어온 이 나라의 내면은 진정한 올바름의 가치관과 실력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며, 기회주의적 사고관과 뇌물관이 뿌리깊게 잡혀있어서 이러한 잘못된 사회구조를 변혁하려면 아마 일백년의 각고 정도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푸념이 아니다.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르게 이야기하며, 능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한 자성(自省)인 것이다.
‘때’가 있다.
사람은 그‘때’를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때’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기다림 속에서 준비하는 삶을 부지런히 살아가야 어느날 그‘때’가 왔을 때에‘때’가 보이고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사람과의 인연의‘때이다.
또한 만일 평생동안 자신이 원하는 그‘때’가 오질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실망하지 말자.
맑고 의롭게 살다가 죽는 것도 참으로 가치있는 사람의 ‘때’인 것이다.
유년과 청년, 중년을 허송하고 불의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말년을 의롭게 보내고 사년을 후회없이 맞을 수 있는 지혜안을 이제부터라도 갖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 일생도 잠시 지나가는‘때’인 것이다.
필자가 보는‘때’의 시절은 돌이켜보면 수없이도 많이 지나간듯 하다.
말년 초입문에 서서 세상을 되돌아보니, 내가 태어난 나라, 이 대한민국은 정치적 권세가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장 큰 기계임을 깨닫게 되었다.
진작에 우리 부모가 조금 더 지혜가 있었더라면 일찌감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또는 정객이 되기위한 삶의 출발을 하였을 걸 하는 자책이 앞서기도 한다.
출세하기 위해서 보다는 너무나도 이 가슴 안에 세상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원대한 꿈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이상도, 꿈도 이룰 수 있는 현세(現世)임을 중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이 되었고, 문인이 되었고, 문화예술인이 되었기에 한편으로는 큰 행복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결국은 괴리감에 빠질 때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화예술도 문학도 권력의 시종이 되어야만 성공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문제와 해결점은 하나밖에 없다.
‘때’를 기다리는 나와 우리에게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저 열심히 내 능력을 더욱 배양하고, 숙련하며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을 최선을 다해 추구해 가는 것이다.
어느 날 그 ‘때’를 볼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언제인가는 문득 다가올 사년을 향해 늘 출발하는 것이다.
온 대지, 산하에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때로는 한낮에 지쳐서 삶의 회의가 간절해지기도 하지만 문득 교외로 나가 깊은 밤의 자연 속에 홀로 서 보면 한여름 밤의 정취가 너무도 아름답다.
이 시대는 춘추전국과 같이 요란하지만 우리 문인의 자세는 신중하고 청렴해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과 시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면 그것이 바로‘경세제민’의 백성을 생각하는 선비의 삶이다.
‘
때’를 바로 볼 줄 아는 능력은 오랜 기다림에서 온다.
숲가에 맹꽁이 소리 요란한 여름날 밤 남양호의 창가, 하룻밤 머무는 책상에서 지나간 봄의 싱싱한 들판을 왜 떠올리게 되는지 나 자신도 알 수는 없지만 당나라 시인 이백의 춘사(春思)를 떠올리며 한국신춘문예 2014년 여름호를 펴낸다.
춘사(春思)
시 / 이백(李白)
연초여벽사(燕草如碧絲) 연나라 풀잎이 파란실 같은 때에
진상저녹지(秦桑低綠枝) 진나라 뽕나무는 푸르른 가지를 내리웠고
당군회귀일(當君懷歸日) 당신께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는 날이
시첩단장시(是妾斷腸時) 내 창자가 끊어지는 때이지요.
춘풍부상식(春風不相識) 봄바람은 전혀 나를 알지 못하는데
하사입라장(何事入羅幛) 어찌하여 내 비단 휘장 속으로 들어오는지요.
여름이 와 있다.
이 찌는 여름에 희망과 도전의 글을 쓰고 싶다.
올 여름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산야에서 잠깐씩 불어오는 시원
한 바람결을 옷깃에 고마워하며, 진한 그리움과 사랑의 시를 쓰고 싶다.
이 험하고 오염된 세상에서, 그래도 아직도 숨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선한 백성을 위해서 무엇인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다.
우리 한국신춘문예 회원 작가들께서도 무더위에 처지지말고 한여름 속에서 더욱 열심히 글을 쓰고, 독서에도 게을리 하지말고, 좋은 글로써 세상을 일깨우는 사명감으로 신선한 결실의 가을을 준비하시기를 기원드린다.
2014년 7월 20일
한국신춘문예 발행인 엄 원 지